자기개발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덩어리로 걸어본 적이 없는 겁니다

Daniel · · 조회 18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덩어리로 걸어본 적이 없는 겁니다

다이어리를 빽빽하게 채우는 건 시간 관리가 아니라 색칠공부일 수 있습니다.

칸을 다 채우면 뿌듯합니다. 하루를 알차게 산 것 같고, 적어도 게으르지는 않았다는 증거가 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나서도 "그래서 뭐가 남았지?"라는 질문에 답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획적으로 사는 것과 시간을 잘 쓰는 건 같은 말이 아닙니다

시간을 아무리 잘 쪼개 써도, 그 시간이 내가 공헌해야 하는 목표·정해둔 우선순위·내가 잘하는 방식과 연결되지 않으면 대부분 자기만족으로 끝납니다.

그러니까 시간을 잘 관리한다는 건 계획적으로 행동한다는 말과 다릅니다. 시간을 잘 쓴다는 건, 내가 공헌해야 하는 목표에 우선순위를 정해서 거기에 덩어리 시간을 거는 것입니다.

스케줄은 그걸 잘하려고 관리하는 도구지, 스케줄 관리 자체가 핵심이 아닙니다.

실제로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안 나는 분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간 관리는 정말 열심히 합니다. 앱도 쓰고, 주간 계획도 세우고, 회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 본인이 진짜 써야 하는 시간이 없습니다.

왜 잘게 쪼갠 시간으로는 안 될까요?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조각나 있는 게 문제인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폴 그레이엄은 2009년에 쓴 Maker's Schedule, Manager's Schedule에서 이 차이를 정리했습니다. 관리자의 하루는 한 시간 단위로 잘려 있어도 굴러가지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최소 반나절 단위의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회의가 하나 끼면, 오후 전체가 각각 너무 작아서 아무것도 못 하는 두 조각으로 쪼개진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시간짜리 회의의 비용이 한 시간이 아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앞뒤로 남은 시간이 같이 무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를 촘촘히 채운 사람이 오히려 깊이 있는 결과를 못 냅니다. 칸은 다 찼는데, 진짜 성과가 나오는 종류의 일은 그 칸 크기로 들어가지 않거든요.

돌아보면 지금까지 내가 만든 성과들도 대부분 비슷합니다. 하루를 골고루 잘 쓴 날에서 나온 게 아니라, 한 가지에 길게 붙어 있었던 몇 번의 구간에서 나왔습니다.

그럼 어떻게 덩어리를 만드나요?

방법은 순서대로 네 단계입니다. 새 도구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① 내 시간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먼저 봅니다. 계획한 시간 말고 지난 2주의 실제 캘린더를 펼쳐보세요. 회의가 가장 적게 잡히는 요일과 시간대, 사람들이 나를 덜 찾는 구간이 반드시 보입니다. 이건 감이 아니라 데이터가 말해줍니다.

② 그 자리에 90분짜리 하나를 못 박습니다. 하루 전체를 비우려 하지 마세요. 일주일에 한두 번, 90분이면 시작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 칸에는 할 일을 여러 개 적지 않습니다. 하나만 적습니다.

③ 미리 말해둡니다. 못 박기만 하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으면, 그 시간은 제일 먼저 뺏깁니다. 이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왜 그 시간이 필요한지를 한 번만 말해두면 방어가 훨씬 쉬워집니다.

④ 밀리면 옮기되, 없애지는 않습니다. 급한 일이 치고 들어오는 주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럴 땐 다른 자리로 옮기세요. 지우면 다음 주에 다시 생기지 않습니다.

미리 말해둘 때 쓸 수 있는 문장

③번이 가장 어렵습니다. 유난 떠는 것처럼 보일까 봐 대부분 그냥 조용히 잡아두고 조용히 뺏깁니다. 아래 문장들은 그대로 쓰셔도 됩니다.

상황 미리 말해두는 문장
팀장에게 정기적으로 확보할 때 "수요일 오전은 ○○ 작업에 집중해서 목요일에 결과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 시간 회의는 가급적 오후로 잡아주실 수 있을까요?"
팀 채널에 공유할 때 "화·목 오전 10~11시 30분은 ○○ 집중 시간으로 잡아뒀습니다. 급한 건은 메신저로 남겨주시면 바로 뒤에 확인하겠습니다."
회의 요청이 겹칠 때 "그 시간은 ○○ 마감 작업이 잡혀 있어서, 같은 날 2시 이후면 언제든 가능합니다."
요청이 들어왔을 때(거절 아님) "지금 ○○ 마무리 중이라 12시 이후에 바로 보겠습니다. 더 급하시면 지금 바꿔서 볼게요."
캘린더 제목으로 걸어둘 때 "[집중] ○○ 초안 — 방해 가능(급한 건은 불러주세요)"
신입·주니어라 말 꺼내기 어려울 때 "오전에 ○○ 먼저 끝내놓고 나머지 요청 처리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마지막 줄이 중요합니다. 이건 일을 안 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순서를 알리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팀장은 순서를 알려주면 오히려 편해합니다.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못 쓰는 자리라면요?

솔직히 그런 자리가 있습니다. 팀장이 아무 때나 부르고, 고객 연락이 실시간으로 들어오고, 하루가 남의 요청으로 돌아가는 일들이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모든 시간을 그렇게 쓰자는 게 아닙니다. 치고 들어오는 시간은 어차피 있습니다. 그건 그대로 두면 됩니다.

다만 적어도 덩어리 하나는 "이 시간은 이걸 하는 시간"이라고 못을 박아야 합니다. 성과가 나오는 시간을 선언해두는 거예요.

그리고 통제가 정말 어려운 자리일수록 팀장이 바쁜 시간을 노리는 게 현실적입니다. 상사가 회의에 들어가 있는 시간, 조직 전체가 바깥 일정으로 비는 시간이 대개 나에게는 가장 조용한 시간입니다. 그 자리를 내 덩어리로 쓰면 됩니다.

교대 근무나 콜 응대처럼 그마저도 어려운 경우라면, 덩어리의 크기를 90분이 아니라 30분으로 낮춰서 시작하셔도 됩니다. 중요한 건 길이가 아니라 끊기지 않는 한 칸이 존재하는가입니다.

덩어리가 있느냐 없느냐가 가릅니다

시간 관리를 열심히 하는데도 성과가 안 나온다면, 관리를 더 정교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칸을 하나 비우고, 거기에 제일 중요한 일 하나를 통째로 넣어야 합니다.

그 덩어리가 있느냐 없느냐가 색칠공부와 성과를 가릅니다.

이번 주 캘린더에서 회의가 가장 적은 시간대를 찾아보세요. 그 자리에 90분 한 칸, 일 하나만 적어두시면 됩니다.

이 글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다섯 가지 중 네 번째입니다. 덩어리로 결과를 만들었다면, 마지막은 그 결과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입니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할 때 결과가 잘 나오는 사람인지 궁금하시면 9WAY 강점 진단이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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