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다 같이 한 거예요"의 대가 — 겸손할수록 기록은 정직하게

Daniel · · 조회 102
"다 같이 한 거예요"의 대가 — 겸손할수록 기록은 정직하게

"제가 한 건 별로 없어요. 다 같이 한 거예요."

프로젝트 하나 잘 끝나고 팀장이 "이거 누가 한 거야?"라고 물었을 때, 우리 입에서 거의 자동으로 나오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팀을 부드럽게 하는 좋은 말버릇입니다.

문제는 이 말을 몇 년 반복했을 때 치르게 되는 대가입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우리가 걱정하는 곳(평판)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서 청구됩니다.

겸손이 왜 손해가 될까요?

다들 평판을 걱정합니다. 내 공을 남들이 몰라줄까 봐. 그런데 코칭 현장에서 반복해서 확인한 실제 손실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남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잊어버립니다.

"다 같이 한 거예요"라고 말하는 순간마다, 내가 어느 부분을 해냈는지에 대한 기억도 함께 뭉개집니다. 기억은 말하는 대로 정리되는 성질이 있어서, 내 기여를 뭉뚱그려 말하면 기억도 뭉뚱그려 저장됩니다. 몇 년 뒤 "나는 잘하는 게 없다"는 결론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만들어진 기록의 공백인 경우가 많습니다.

평가 면담에서 왜 말문이 막힐까요?

연말 평가 면담에서 "올해 어떤 성과가 있었죠?"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를 떠올려보세요. 분명 일 년 내내 바빴는데, 막상 말할 게 안 떠오릅니다. 이직 서류 앞에서도 똑같습니다. "제가 잘하는 건…" 하다가 말문이 막히죠.

커리어의 관문들 — 평가 면담, 면접, 연봉 협상 — 은 하나같이 기억이 아니라 증거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증거는 그 자리에서 지어낼 수 없습니다. 평소에 쌓여 있어야 꺼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숫자와 디테일부터 사라지기 때문에, "여러 부서와 협업해서 일정을 좀 줄였던 것 같은데…" 수준의 증언만 남습니다. 그 말로는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습니다.

'내가 한 부분' 한 줄, 어떻게 쓰나요?

해법은 겸손을 버리는 게 아닙니다. 말은 지금처럼 겸손하게 하되, 기록은 정직하게 하는 것입니다.

형식은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내가 한 행동] + [그래서 생긴 결과]

일주일에 하나, 잘 끝난 일에서 '그중 내가 한 부분'만 적습니다. 상황별 예문을 모았습니다. 자기 일과 가까운 걸 골라 형식만 빌려 쓰세요.

상황 한 줄 기여 기록 예
회의 흩어진 논의를 내가 한 장으로 정리해서, 다음 날 바로 실행이 시작됐다
일정 두 팀 일정을 내가 조정해서, 마감 충돌 없이 넘어갔다
문서 보고서 초안을 내가 잡아서, 팀장이 살만 붙이면 되는 상태로 넘겼다
검토 배포 전 숫자를 내가 재확인해서, 틀린 수치가 나가는 걸 막았다
갈등 두 사람 입장을 내가 따로 들어서, 다음 회의가 정상적으로 굴러갔다
고객 불만 전화를 내가 받아 정리해서, 재계약 논의가 이어졌다
신입 후배 질문을 내가 받아줘서,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았다
시작 다들 미루던 일을 내가 먼저 열어서, 프로젝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쓸 때 두 가지만 지키면 됩니다. 첫째, "열심히 했다"가 아니라 행동 동사와 사실로 씁니다. 둘째, 결과에 숫자가 있으면 숫자를 남깁니다("검토 시간 절반", "이틀 단축"). 숫자는 6개월만 지나도 제일 먼저 사라지는 정보입니다.

이렇게 쌓인 한 줄들이 평가 면담에서, 면접에서, 연봉 이야기가 나오는 자리에서 그대로 증거가 됩니다.

기록과 자랑은 다른가요?

다릅니다. 자랑은 남에게 하는 것이고, 기록은 나에게 하는 것입니다. 기록해둔다고 해서 회의에서 "이거 제가 한 거예요"라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팀 앞에서는 지금처럼 "다 같이 한 거예요"라고 말해도 됩니다. 다만 노트에는 정직하게 남기세요. 겸손은 미덕이 맞습니다. 겸손이 기록까지 지우게 두는 것만 손해입니다.

겸손할수록, 기록은 더 정직하게. 이번 주에 잘 끝난 일 하나에서 시작해보세요.

이 주제는 제 책 「내 커리어엔 내가 없었다」에서 '자기 재능이 본인 눈에 안 보이는 이유'의 하나로 다룬 내용입니다.

기록이 쌓이기 전에 내 기여의 결부터 확인하고 싶다면 9WAY 강점 진단(무료, 10분)도 좋은 출발점입니다.

커리어 방향, 전문가와 함께 설계하세요

강점 기반 진로 탐색과 커리어 전략을 CareerTech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댓글 0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하세요.

관련 글

열심히 하는데 인정 못 받는다면 — 내일 바로 쓰는 일잘러 심리학 3가지
커리어

열심히 하는데 인정 못 받는다면 — 내일 바로 쓰는 일잘러 심리학 3가지

"이거 언제까지 할까요?" 일을 받으면서 이렇게 묻는 분이 많습니다. 예의 바른 질문이고, 틀린 말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한마디로 그 일의 마감은 상대가 정하게 되고, 그렇게 정해진 날짜는 대개 빠듯합니다. 그때부터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라 쫓기는 일이 됩니다. 저는 회사에서 열심히 하는데도 인정을 못 받는 사람들을 오래 봐왔습니다. 일을 못해서인 경우는...

Daniel ·
31
 [슬램덩크] 북산은 어떻게 산왕공고를 이길 수 있었을까?
커리어

[슬램덩크] 북산은 어떻게 산왕공고를 이길 수 있었을까?

농구 만화 슬램덩크에서 가장 유명한 경기는 북산고가 산왕공고를 이기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팀을 맡아본 사람이 이 경기를 다시 보면 좀 이상한 대목이 있습니다. 포지션을 하나씩 놓고 비교하면 산왕공고가 거의 모든 자리에서 위인데도 졌습니다. 만화니까 그렇다고 넘길 수도 있습니다. 다만 회사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이력서로 보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

Daniel ·
68
연말 평가에서 처음 듣는 지적이 나왔다면 — 평가는 있었는데 관리가 없었던 겁니다
커리어

연말 평가에서 처음 듣는 지적이 나왔다면 — 평가는 있었는데 관리가 없었던 겁니다

연말 평가 면담에서 "상반기부터 주도성이 부족했다"는 말을 처음 들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1년 내내 팀장에게 들은 말은 "수고했다"가 전부였습니다. 매주 회의에서는 수고했다고만 하다가, 연말에 기대 이하 등급을 통보한 겁니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11개월 동안 숨겨둔 판결을 한꺼번에 받은 셈입니다. 그때부터는 대화가 아니라 다툼이 됩니다. 누가 ...

Daniel ·
54
도와줬는데 뒷담화의 주인공이 됐다면 — 고마움이 아니라 빚이 쌓인 겁니다
커리어

도와줬는데 뒷담화의 주인공이 됐다면 — 고마움이 아니라 빚이 쌓인 겁니다

회사 로비에서 자기 뒷담화를 들어버리면 무슨 생각이 먼저 들까요. 이 글을 쓴 분은 "내가 뭘 잘못했나"부터 생각했다고 합니다. 상대는 같이 입사한 동기였습니다. 서로 의지하던 사이였고, 그 친구 일이 좀 느려서 자주 도와줬다고 해요. 친구가 "혼자 다 했다"고 말할 때도 그러려니 넘어갔고요. 안 좋은 소리 듣는 게 싫어서요. 그런데 로비 소파에서, 그 친...

Daniel ·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