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까 버틸까 — 사실 갈림길은 세 개입니다
"떠날까, 버틸까." 이 두 단어 사이에서 몇 달째 왕복 중이라면, 답이 안 나오는 이유부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민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선택지가 잘못 세워져 있어서입니다.
왜 이지선다에서는 답이 안 나올까요?
'버티기'는 선택이 아니라 보류입니다. 그래서 이지선다의 실체는 '이직 vs 보류'이고, 보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으니 고민이 계속 제자리를 돕니다.
실제 갈림길은 세 개입니다.
① 지금 자리에서 다시 디자인한다 — 이런 신호가 있을 때입니다: 일 자체보다 업무 비중·방식이 안 맞는다 / 좋았거나 몰입한 순간이 최근에도 있었다 / 역할을 협의하거나 시험할 여지가 있다. 이 경우 이직은 과잉 처방입니다. 일의 범위와 인식을 바꾸는 쪽(잡크래프팅)이 먼저입니다.
② 한 축만 피봇한다 — 신호: 현 조직·업계에서 가져갈 자산이 있다 / 옆 역할이나 다른 산업에서 내 강점이 더 잘 쓰인다는 단서가 있다 / 변화는 필요하지만 한꺼번에 바꾸는 위험은 줄이고 싶다.
③ 이직·전직한다 — 신호: 중요한 가치가 조직과 계속 충돌한다 / 역할 조정과 피봇을 시도했지만 통로가 막혔다 / 강점을 쓸 무대가 이 조직·업계에 없다.
판별 질문은 하나로 압축됩니다. "한 단계 앞의 더 작은 선택지를 충분히 시도했는가?" 답이 '아직'이면, 그것부터 하는 게 순서입니다. ①을 안 해보고 ③으로 가면, 새 회사에서 같은 고민이 다시 시작될 확률이 높습니다. (단, 괴롭힘·비윤리 환경은 예외 — 작은 실험을 기다릴 사안이 아니라 안전이 우선입니다.)
남들 말 말고, 무엇으로 판단하나요?
코칭에서 만난 콘텐츠 2년 차 윤아 님의 말이 이 문제를 요약합니다. "팀장이 될까, 전문가로 파고들까, 옮길까 — 선배들에게 물어봐도 답이 다 달라요. 제 커리어인데 남들 말만 듣고 있더라고요."
판단 기준이 없으면 결국 연봉 숫자와 남의 말로 결정하게 됩니다. 기준을 만드는 도구가 커리어 로드맵입니다. 종이에 3년·5년·10년의 시간 축을 긋고, 각 시기의 모습과 함께 그 시기에 필요한 경험·스킬 두 칸을 적는 겁니다. 미래의 자리는 소망이지만, 경험과 스킬은 계획이 되니까요.
여기서 오해 하나를 풀어야 합니다. 로드맵은 예언이 아닙니다. 그대로 안 돼도 상관없습니다. 로드맵의 쓸모는 갈림길에 섰을 때 "이 길이 3년 후 내 모습에 닿는가?"라고 물을 기준선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윤아 님도 로드맵을 그리자 질문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팀장이냐 전문가냐'에서 '3년 후 내 모습에 어느 길이 닿는가'로요.
이번 주에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한 걸음
결정 워크시트의 마지막 칸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이것입니다. 이번 주에 할 수 있는, 되돌릴 수 있는 한 걸음.
- 다시 디자인 쪽이면 → 상사와 역할 조정 대화 1회
- 피봇 쪽이면 → 그 직무 현직자 1명과 커피챗, 또는 사이드 프로젝트 1개 착수
- 이직 쪽이면 → 사내 공모·시장 정보 확인부터
가설 문장까지 적으면 완성입니다. "만약 라면, 일 것이다." 커다란 결정을 작은 실험으로 쪼개는 순간, 몇 달짜리 왕복 고민이 몇 주짜리 검증으로 바뀝니다.
떠날까 버틸까가 아니라 — 세 갈래 중 어디인지, 그리고 이번 주의 한 걸음은 무엇인지. 질문을 바꾸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세 갈래 판별 신호 전체와 결정 워크시트(한 장 정리)는 제 책 「내 커리어엔 내가 없었다」 Part 4에 있습니다.
세 갈래 모두의 출발점인 '내 강점이 어디서 더 잘 쓰이는가'는 9WAY 강점 진단(무료, 10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커리어 방향, 전문가와 함께 설계하세요
강점 기반 진로 탐색과 커리어 전략을 CareerTech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관련 글
열심히 하는데 인정 못 받는다면 — 내일 바로 쓰는 일잘러 심리학 3가지
"이거 언제까지 할까요?" 일을 받으면서 이렇게 묻는 분이 많습니다. 예의 바른 질문이고, 틀린 말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한마디로 그 일의 마감은 상대가 정하게 되고, 그렇게 정해진 날짜는 대개 빠듯합니다. 그때부터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라 쫓기는 일이 됩니다. 저는 회사에서 열심히 하는데도 인정을 못 받는 사람들을 오래 봐왔습니다. 일을 못해서인 경우는...
[슬램덩크] 북산은 어떻게 산왕공고를 이길 수 있었을까?
농구 만화 슬램덩크에서 가장 유명한 경기는 북산고가 산왕공고를 이기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팀을 맡아본 사람이 이 경기를 다시 보면 좀 이상한 대목이 있습니다. 포지션을 하나씩 놓고 비교하면 산왕공고가 거의 모든 자리에서 위인데도 졌습니다. 만화니까 그렇다고 넘길 수도 있습니다. 다만 회사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이력서로 보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
연말 평가에서 처음 듣는 지적이 나왔다면 — 평가는 있었는데 관리가 없었던 겁니다
연말 평가 면담에서 "상반기부터 주도성이 부족했다"는 말을 처음 들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1년 내내 팀장에게 들은 말은 "수고했다"가 전부였습니다. 매주 회의에서는 수고했다고만 하다가, 연말에 기대 이하 등급을 통보한 겁니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11개월 동안 숨겨둔 판결을 한꺼번에 받은 셈입니다. 그때부터는 대화가 아니라 다툼이 됩니다. 누가 ...
도와줬는데 뒷담화의 주인공이 됐다면 — 고마움이 아니라 빚이 쌓인 겁니다
회사 로비에서 자기 뒷담화를 들어버리면 무슨 생각이 먼저 들까요. 이 글을 쓴 분은 "내가 뭘 잘못했나"부터 생각했다고 합니다. 상대는 같이 입사한 동기였습니다. 서로 의지하던 사이였고, 그 친구 일이 좀 느려서 자주 도와줬다고 해요. 친구가 "혼자 다 했다"고 말할 때도 그러려니 넘어갔고요. 안 좋은 소리 듣는 게 싫어서요. 그런데 로비 소파에서, 그 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