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복지도 좋고 사람도 괜찮은데 회사가 재미없다면 — 소속감은 존재의 문제입니다

Daniel · · 조회 25
복지도 좋고 사람도 괜찮은데 회사가 재미없다면 — 소속감은 존재의 문제입니다

주 2회 재택에 아무 때나 출근하는 유연근무, 연봉도 만족스럽고 이상한 사람도 없는 회사. 여기 다니면 행복할까요.

8년차에 옮긴 지 3년 반 된 분이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처음엔 신의 직장인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미팅 없는 날은 출근해서 한 마디도 안 하고 퇴근한다고 합니다. 말이 하고 싶은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고요. "무색무취 인간이 된 것 같다,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없이 0인 느낌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물었습니다. 이거 배부른 고민이냐고요.

저는 배부른 고민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회사의 조건이 왜 몰입을 만들지 못하나요?

우리가 좋은 회사의 조건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연봉, 재택, 복지, 근무환경.

이건 사실 자부심이 아니라 편안함을 이야기하는 것들입니다. 편안함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편안함은 사람을 머무르게 할 수는 있어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복지 좋은 회사에 다니면서도 일할 맛이 안 난다는 분들이 그렇게 많은 겁니다. 몰입은 다른 계좌에 쌓이거든요. 편안함 계좌가 가득 차 있어도 몰입 계좌가 비어 있으면 사람은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그 몰입 계좌의 첫 칸이 소속감입니다.

소속감은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 아닌가요?

소속감이라고 하면 대부분 회식에 잘 나가고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는 걸 떠올립니다. 그것만은 아닙니다.

소속감은 이런 것들로 확인됩니다.

  • 내가 낸 의견이 이 팀에서 실제로 다뤄지는가
  •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할 수 있는가
  • 내가 이 팀에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는가

마지막 항목이 핵심입니다. 소속감은 존재론적인 문제입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경험이요.

그러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직은 나쁜 일도 없지만 내가 여기 있다는 존재론적 가치를 확인할 방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0이 되는 겁니다. 갈등도 없고 상처도 없는데 사람이 조용히 사라져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럼 회식을 늘리면 되나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의견은 안 받아주면서 회식만 자주 하면 개인 사생활까지 침해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낮에는 내 말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데 저녁에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면, 그건 소속감이 아니라 부담입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내 의견이 팀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서로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게 되면 회식을 하지 않아도 소속감을 느낍니다. 그게 안 되면 회식을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지금 내 소속감은 어떻게 확인하나요?

친해졌는지를 세지 마시고, 내 말이 어디로 갔는지를 보시면 됩니다. 아래 항목 중 최근 한 달 안에 경험한 것에 표시해보세요.

신호 확인 질문
의견이 다뤄짐 내가 낸 의견이 채택되든 안 되든, 어떻게 됐는지 들은 적이 있다
판단 이유를 들음 반영되지 않았을 때 왜 그런지 설명을 들었다
도움 요청 가능 막혔을 때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정보 접근 내 일과 관련된 결정을 뒤늦게 전해 듣지 않는다
이견 허용 다른 의견을 말해도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는다
역할 인식 팀이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알고 있다
복귀 가능 실수한 뒤에도 자리가 그대로 있었다

표시가 두세 개 이하라면 지금 느끼는 무기력은 예민함이 아니라 신호입니다. 특히 첫 두 항목이 비어 있다면 그것부터 채워야 합니다. 의견이 채택되지 않아도 판단 이유를 들으면 소속감은 지켜집니다. 사라진 게 아니라 판단에 들어갔다는 걸 아니까요.

소속감이 비어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

기다리기만 하면 잘 안 채워집니다. 작게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 내 의견의 행방을 물어봅니다. "지난번에 드린 의견은 어떻게 정리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따지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문장입니다.
  • 한 사람과의 관계부터 만듭니다. 팀 전체에서 자리를 찾으려 하면 막막합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한 사람을 정하면 거기서부터 자리가 생깁니다.
  • 정보가 오는 자리에 들어갑니다. 회의록 정리, 일정 취합처럼 작아 보이는 역할이 실제로는 정보와 사람이 지나가는 길목입니다.

리더라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팀에서 말수가 줄고 겉도는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 세 가지를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 의견을 자주 물어봐주세요. 회의에서 발언을 기다리는 것보다 미리 개별로 묻는 쪽이 훨씬 잘 나옵니다.
  • 그 의견을 어떻게 반영하려고 했는지 보여주세요. 채택 여부보다 처리 과정이 보이는 게 중요합니다.
  • 다른 팀원들에게도 공유해주세요. "이건 ○○님 의견에서 나온 겁니다" 한 마디면 그 사람의 자리가 팀 안에서 확인됩니다.

서로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이 더 많이 전달될수록, 회식을 하지 않아도 소속감은 자랍니다.

마무리

몰입은 관계성에서 만들어지고, 관계성은 소속감을 통해 시작됩니다.

지금 회사에서 겉도는 느낌이 든다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지를 세지 마시고, 내 말이 어디로 갔는지를 확인해보세요. 그 답이 계속 안 보인다면 그건 성격 문제가 아니라 채워지지 않은 칸이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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