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금방 하잖아?" 소리에 기한을 뺏기지 않는 법

"AI로 금방 하잖아?" 소리에 기한을 뺏기지 않는 법

일을 주면서 기한부터 깎는 말이 있습니다. "이거 AI에 맡기면 금방 하잖아?"

이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반박이 안 됩니다. 화가 나는데 뭐라고 받아쳐야 할지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알겠다고 하고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러고는 하루 종일 그 말이 떠오릅니다.

실제로 이 말을 들은 직장인이 온라인에 글을 하나 올린 적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걸 아니까 반박을 못 하겠고, 그래서 더 듣기 싫다고 썼습니다. 그 아래 댓글 하나가 이랬습니다.

"그렇게 금방 할 수 있는 거면 직접 하지, 왜 시켜?"

이 한 줄이 사실 답에 가깝습니다. 이 글은 그 한 줄을 풀어서, 같은 말을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쓸 수 있는 문장까지 정리한 것입니다.

그 말에 왜 반박이 안 될까요

반박이 안 되는 이유는 그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반만 맞아서입니다.

초안은 정말로 AI가 금방 뽑습니다. 보고서 목차도, 메일 초안도, 엑셀 수식도, 몇 분이면 형태가 나옵니다. 그러니 "금방 하잖아"라는 말의 앞쪽 절반은 사실입니다. 사실인 절반이 붙어 있으면 사람은 그 말을 통째로 삼키게 됩니다. 반은 맞는데 반만 반박할 방법이 안 떠오르니까요.

그래서 그 말에 긁힌 건 예민해서가 아닙니다. 반만 맞는 말은 원래 반박이 어렵고, 반박이 어려우면 그냥 다 인정한 사람처럼 서 있게 됩니다. 억울함은 거기서 옵니다.

금방 되는 일은 아무도 시키지 않습니다

여기서 앞의 댓글이 하는 일이 큽니다. 정말 금방 되는 일이었다면, 시킬 시간에 본인이 했을 겁니다. 파일 열고, 붙여넣고, 결과 보고, 그걸 나한테 설명하고, 다시 확인하는 시간보다 직접 하는 게 빠르니까요.

그런데 그 일이 나한테 왔습니다. 그건 초안 말고 남은 게 있다는 뜻입니다. 남은 게 뭔지는 일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이렇습니다.

  • 나온 초안 여러 개 중에 어느 걸 쓸지 고르는 일
  • 숫자가 맞는지, 작년 자료와 어긋나지 않는지 보는 일
  • 이 문장을 이 사람에게 보내도 되는지 판단하는 일
  • 애매한 부분을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아는 일
  • 틀렸을 때 뒷감당하는 일

이건 AI가 안 합니다. 정확히는 AI가 해도 그 결과를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고, 그 자리에 앉힌 사람이 나입니다. 그래서 그 일이 나한테 온 겁니다.

이걸 알고 나면 "AI에 맡기면 금방 하잖아"는 이렇게 들립니다. "초안은 금방 나오지." 여기까지는 맞고, "그러니까 전체가 금방 끝나지"부터는 틀립니다.

그래서 기한을 둘로 나눠서 말합니다

받아치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시간을 받는 게 목적입니다. 그러려면 상대 말의 맞는 절반은 인정하고, 남은 절반에만 시간을 붙이면 됩니다.

"초안은 오늘 드릴게요. 고르고 다듬는 건 이틀 주세요."

이 한 문장이 하는 일이 세 가지입니다. 상대 말을 부정하지 않으니 대화가 안 틀어지고, 이 일이 두 덩어리라는 게 상대 머릿속에 처음 그려지고, 뒤쪽 덩어리에 내 이름이 붙습니다. 무엇보다 초안을 오늘 준다고 먼저 말했기 때문에 미루는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라고 하면 대화가 감정 쪽으로 갑니다. 상대는 자기 말이 틀렸다는 소리로 듣고, 나는 일 못하는 사람처럼 보일 위험을 떠안습니다. 앞의 문장은 그 위험이 없습니다.

상황별로 바로 쓰는 문장

한 문장만으로는 내 일에 안 맞을 수 있으니, 자주 나오는 상황별로 정리했습니다. 상황이 비슷한 줄을 골라 그대로 쓰시면 됩니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이렇게 답합니다
"AI로 하면 금방이잖아, 오늘 안에 되지?" "초안은 오늘 드릴게요. 숫자 맞춰보는 건 내일 오전까지 하겠습니다."
"요즘 그거 다 자동으로 되는 거 아니야?" "뽑는 건 자동인데, 어느 걸 쓸지는 제가 골라야 해서요. 고르는 데 반나절만 주세요."
"초안 나왔으면 끝난 거 아니야?" "초안은 나왔고, 지금은 작년 자료랑 어긋나는 데를 보고 있습니다. 오후에 드릴게요."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만드는 건 금방 끝났고요, 이 숫자로 결정이 나가는 거라 한 번 더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냥 AI가 쓴 거 그대로 보내면 안 돼?" "보낼 수는 있는데, 틀리면 저희가 다시 연락드려야 해서요. 한 번만 보고 보내겠습니다."
(반대로 내가 시간을 줄여도 될 때) "이건 초안만 있어도 되는 일이라 오늘 안에 드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 줄이 중요합니다. 모든 일에 이틀을 부르면 그 문장은 곧 안 먹힙니다. 정말 초안으로 끝나는 일은 초안으로 끝내고, 고르고 확인해야 하는 일에만 시간을 붙여야 이 말이 계속 통합니다.

"그래도 AI가 다 하는 일도 있잖아요"

맞습니다. 그런 일이 실제로 늘고 있습니다. 정해진 양식에 값만 채우는 일, 형식만 맞으면 되는 번역, 회의록 정리처럼 판단이 거의 안 들어가는 일은 앞으로 사람 손을 덜 탈 겁니다.

그래서 이 글의 문장을 모든 일에 붙이면 안 됩니다. 대신 이렇게 갈라보시면 됩니다.

  • 틀려도 크게 안 위험한 일 — 초안으로 끝냅니다. 여기에 시간을 부르면 신뢰가 깎입니다.
  • 틀리면 누가 곤란해지는 일 — 고르고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시간을 말해야 합니다.

이 구분을 스스로 하고 있으면, "AI로 금방 하잖아"는 더 이상 공격이 아니라 그냥 일정 이야기가 됩니다.

이 말이 계속 아팠던 진짜 이유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 말이 유독 아픈 건 시간을 뺏겨서만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일에서 눈에 보이는 부분만 값이 매겨졌기 때문입니다.

초안을 뽑는 건 눈에 보입니다. 어느 초안을 쓸지 고르고, 숫자가 어긋난 걸 찾아내고, 이건 물어봐야겠다고 판단하는 건 눈에 안 보입니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일수록 그 부분이 통째로 안 세어집니다.

그러니 기한을 둘로 나눠 말하는 건 방어가 아니라 안 보이던 절반을 말로 꺼내는 일에 가깝습니다. 한 번 꺼내 놓으면 다음부터는 상대도 그 덩어리를 기억합니다.

정리하면

  • 그 말은 반만 맞습니다. 초안은 금방 나오고, 고르고 확인하고 책임지는 건 안 끝납니다.
  • 금방 되는 일은 아무도 시키지 않습니다. 나한테 왔다는 건 남은 몫이 있다는 뜻입니다.
  • 그러니 부정하지 말고 기한을 둘로 나눠 말합니다. "초안은 오늘, 고르고 다듬는 건 이틀."
  • 정말 초안으로 끝나는 일에는 시간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래야 필요할 때 이 말이 먹힙니다.

일을 잘하는데도 유독 자기 몫이 안 세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개는 눈에 안 보이는 쪽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서 힘이 나고 어떤 일이 유독 지치는지 궁금하시면 9WAY 강점 진단에서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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