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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해도 될까요"가 불편했던 이유 — 기록을 내 쪽으로 가져오는 법

Daniel · · 조회 7
"녹음해도 될까요"가 불편했던 이유 — 기록을 내 쪽으로 가져오는 법

신입이 교육받는 자리에서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혹시 녹음해도 될까요?"

이 한마디에 사람들이 갈렸습니다. 몰래 켠 것도 아니고 먼저 물어보고 한 건데도요. 한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녹음은 하지 마. 진짜 하지 말아줘."

반대쪽은 이렇게 받습니다.

"걍 잘 배우려고 물어보는 것 같은데, 그걸 쎄하다고 받아들이니까 그 질문조차 꼽게 들리는 거겠지."

저는 양쪽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입은 예의를 지킨 게 맞고, 선배는 진짜로 불편했던 거니까요. 그래서 누가 옳은지를 따지기보다, 녹음기가 켜지는 순간 가르쳐주는 사람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같이 보면 좋겠습니다.

기록이 남는다 싶으면 사람은 말을 고릅니다

이건 그 선배가 예민해서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렇게 됩니다.

가장 익숙한 장면이 회의록입니다. 회의록이 올라간다고 하면 다들 말이 조심스러워지죠. 확정 안 된 건 입에 안 올리고, 남 얘기는 이름을 빼고 말하고, 애매한 건 "확인해보겠습니다"로 넘깁니다. 사람이 갑자기 소심해진 게 아니라, 내 말이 통째로 남아서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록이 남는다는 느낌만으로 말이 줄어드는 현상은 학계에서도 위축 효과(chilling effect) 라는 이름으로 다룹니다. 주로 디지털 감시 쪽에서 연구되어 왔는데, 모리츠 뷔히 연구팀이 2022년에 이 분야를 정리한 논문을 보면 자기 데이터가 남는 게 걸려서 온라인에 의견을 안 올린다고 답한 사람이 응답자의 45%였습니다. 다만 이 연구팀도 위축 효과를 엄밀하게 입증하는 건 아직 어렵다고 솔직하게 적어놨습니다. 그러니 이 숫자를 회의실에 그대로 옮길 건 아니고, 남는다 싶으면 사람이 말을 아낀다는 방향만 가져오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녹음이 켜진 순간부터 그 선배는 이렇게 됩니다. 확실한 것만 말합니다.

그런데 일 배울 때 제일 값진 건 확실한 게 아닙니다

확실한 것은 대개 문서에 있습니다. 매뉴얼, 규정집, 지난 보고서에 다 적혀 있죠. 굳이 사람 앞에 앉아서 들을 필요가 없는 것들입니다.

사람한테서만 나오는 건 이런 말들입니다.

  • "원칙은 이게 맞는데, 우리 팀은 그냥 이렇게 해."
  • "저 부장님한테는 이 순서로 올려야 돼."
  • "이건 서류상 이틀인데 실제로는 일주일 봐야 해."

전부 어디에도 안 적혀 있고, 녹음이 켜져 있으면 제일 먼저 사라지는 말들입니다. 자기 말이 남는 상황에서 "규정은 이런데 우리는 다르게 한다"고 말해줄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요.

이걸 학문 쪽에서는 암묵지라고 부릅니다. 마이클 폴라니가 『The Tacit Dimension』(1966)에서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고 쓴 그 개념입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아무리 잘 설명해도 그 설명만으로는 못 타는 것처럼, 일에도 말로 옮겨지지 않고 옆에서 붙어야만 넘어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됩니다.

잘 남기려고 한 행동이, 배울 양을 줄입니다.

녹음 파일은 통째로 남았는데 정작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살아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른 말인 겁니다.

그럼 어떻게 남기면 될까요

남기는 일을 상대가 아니라 내가 하면 됩니다. 문장 하나면 바뀝니다.

"오늘 배운 거 정리해서 내일 보여드릴게요. 틀린 데만 짚어주시면 돼요."

이 말이 하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상대가 말을 고를 이유를 없앱니다. 남는 게 자기 말이 아니라 내 정리니까요. 또 하나는 상대의 부담을 확 낮춥니다. 처음부터 다 설명하는 것보다 틀린 데만 짚는 게 훨씬 쉽거든요. 그래서 봐주다가 "아 맞다, 이것도 있어" 하고 하나 더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우는 쪽 입장에서도 이쪽이 남습니다. 헨리 로디거와 제프리 카픽이 2006년 『Psychological Science』에 실은 실험을 보면, 같은 시간을 들여도 다시 읽은 쪽보다 기억에서 꺼내본 쪽이 일주일 뒤에 훨씬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시 읽은 쪽은 그 직후에만 잠깐 앞섰고요.

녹음 파일을 나중에 다시 듣는 건 다시 읽기에 가깝습니다. 반면 내가 정리해서 써보는 건 기억에서 꺼내는 쪽이고요. 게다가 대부분의 녹음 파일은 다시 안 듣습니다. 이건 다들 경험으로 아실 겁니다.

상황별로 바로 쓰는 정리 확인 문장

교육 자리에서만 쓰는 게 아닙니다. 내가 배워야 하고 상대는 바쁜 자리라면 어디서나 같습니다.

상황 이렇게 말합니다
신입 교육·OJT "오늘 배운 거 정리해서 내일 아침에 보여드릴게요. 틀린 데만 짚어주시면 돼요."
업무 인수인계 "지금 말씀하신 순서대로 제가 문서로 만들어볼게요. 빠진 단계 있는지만 봐주세요."
회의 "제가 정리해서 오늘 안에 공유드릴게요. 다르게 기억하시는 부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상사와 1on1 "말씀 주신 것 중에 제가 이 세 가지로 이해했는데, 우선순위가 이 순서 맞을까요?"
고객·외부 미팅 "논의된 내용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확인하시고 회신 주시면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선배한테 물어볼 때 "저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이 방향이 맞는지만 봐주실 수 있을까요?"
실수하고 나서 "이번 건 제가 이 지점에서 놓친 것 같은데, 제가 본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여러 명에게 배울 때 "○○님께는 이 부분을 이렇게 들었는데, 팀마다 다르게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오래 걸리는 일을 배울 때 "일단 여기까지 제가 해보고, 막히는 지점 모아서 한 번에 여쭤봐도 될까요?"
자리를 옮겨 다시 배울 때 "전에 하던 방식은 이랬는데, 여기서는 어떤 부분이 다른지만 알려주시면 맞춰보겠습니다."

공통점이 보이실 겁니다. 전부 상대가 처음부터 설명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걸 봐주는 모양입니다. 상대의 일이 설명에서 확인으로 바뀌면 말이 훨씬 편하게 나옵니다.

정리를 보여줬는데 반응이 시큰둥하면 뭐가 문제일까요

이 방법이 안 먹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개 정리를 잘못 만들어서 그렇습니다.

너무 길면 안 봅니다. 두 시간 들은 걸 A4 세 장으로 만들어 가면 그 자체가 상대에게 숙제가 됩니다. 한 장 안쪽, 항목 열 개 안쪽이면 충분합니다.

받아쓰기는 정리가 아닙니다. 들은 말을 순서대로 옮겨놓은 건 녹취록이지 정리가 아니고, 상대가 봐줄 게 없습니다. 내가 이해한 순서로 다시 배열해야 어디를 잘못 알았는지가 드러납니다.

모르는 걸 빼놓으면 그 부분은 영영 안 채워집니다. 애매하게 들은 대목을 그냥 넘기지 말고 "여기는 제가 못 따라갔습니다"라고 표시해두시는 게 낫습니다. 그게 상대가 제일 빨리 짚어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녹음이 필요한 자리는 있습니다

이 글이 녹음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기록 자체가 목적인 자리에서는 당연히 녹음이 맞습니다.

  • 계약 조건이나 금액이 오가는 자리처럼 나중에 말이 달라지면 곤란해지는 경우
  • 고객 응대나 클레임 처리처럼 회사 규정상 남기게 되어 있는 경우
  • 듣는 데 어려움이 있거나 모국어가 아니라서 실시간으로 다 못 따라가는 경우
  • 괴롭힘이나 부당한 지시처럼 증거로 남겨야 하는 경우

이때는 목적이 배우는 게 아니라 남기는 거라서 판단이 달라집니다. 지금 이 자리가 더 많이 꺼내게 하고 싶은 자리인지, 정확히 남겨야 하는 자리인지를 먼저 구분하시면 됩니다. 배우려는 자리라면 정리 쪽이 낫고, 남겨야 하는 자리라면 녹음이 맞습니다.

배우는 속도는 여기서 갈립니다

같은 자리에 앉아도 상대가 말을 고르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말을 더 꺼내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태도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기록을 누가 쥐느냐에서 생깁니다.

배우는 방식은 방법이기만 한 게 아니라 상대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그 신호가 상대가 꺼내놓는 양을 정합니다.

그 신입에게 돌아가 보면, 이 친구가 잘못한 건 없습니다. 잘 배우려고 한 게 맞고요. 다만 한 문장만 바꿨어도 훨씬 많이 얻어 갔을 겁니다.

사람마다 잘 배우는 방식이 다르고, 어떤 자리에서 정보가 잘 들어오는지도 다릅니다. 내가 어떤 조건에서 빨리 배우는 사람인지 궁금하시면 9WAY 강점 진단이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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