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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자동화, 팀에 공유해야 할까요 — 감추기와 나누기 사이

Daniel · · 조회 99
내가 만든 자동화, 팀에 공유해야 할까요 — 감추기와 나누기 사이

회사가 지원해준 AI 도구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해서, 혼자만 정시에 퇴근하는 후배가 있었습니다. 팀이 같이 쓰자고 하니까 거절했다고 해요. 내 시간 들여 만든 건데 왜 공짜로 나눠야 하냐고, 공유하면 자기 일만 늘어난다고요.

이 글에 댓글이 260개 달렸습니다. 이기적이라는 쪽과 저 말이 맞다는 쪽이 팽팽하게 부딪혔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논쟁 자체가 질문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두 선택지가 모두 지는 게임입니다

공유하느냐 마느냐, 이 두 갈래로 보면 어느 쪽을 골라도 손해가 남습니다.

감추면 실력이 어디에도 안 잡힙니다. 나 혼자 빨리 끝내는 건 조직 입장에서 그냥 "그 사람은 일이 좀 여유 있나 보다"로 읽힙니다. 평가표에는 처리한 건수만 남고 그걸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안 남습니다. 이직 시장에서는 더합니다. 면접에서 말할 수는 있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남이 써본 적 없는 도구는 검증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조건 없이 공유하면 반대쪽 손해가 옵니다. 도구는 팀 전체가 쓰는데, 고장 나면 찾는 사람은 나 하나입니다. 쓰는 사람이 늘수록 문의도 늘고, 그 시간은 어느 업무에도 안 잡힙니다. 몇 달 지나면 원래 자기 일에 유지보수 업무가 얹힌 상태가 되는데, 얹힌 쪽은 아무도 세지 않습니다.

그래서 후배의 거절이 이기적이라고만 하기도 어렵습니다. 조건 없는 공유의 결말을 정확히 예측한 것에 가깝거든요. 다만 그 예측이 맞다고 해서 감추는 게 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진짜 질문은 공유 여부가 아닙니다

이 문제의 본질은 공유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내가 만든 게 어떤 조건으로 건너가느냐입니다.

인정이라는 건 내 결과물이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 쓰일 때 생깁니다. 감추면 그 이동이 아예 없고, 조건 없이 주면 이동은 있는데 이름이 없습니다. 둘 다 인정이 안 생기는 구조인 거죠.

그러니 붙여야 할 건 거절이 아니라 조건입니다. 두 가지면 됩니다.

이름과 시간.

누가 만든 건지 남기는 것(이름), 관리하는 몫을 업무로 잡는 것(시간). 이 둘이 붙는 순간 내 실력은 팀의 자산이 되면서 동시에 내 것으로도 남습니다.

상황별로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원칙만 알면 막상 그 자리에서는 말이 안 나옵니다. 바로 쓸 수 있는 형태로 정리했습니다.

상황 이렇게 말합니다
팀장이 "그거 팀에 공유해줘"라고 할 때 "좋습니다, 같이 쓰시죠. 대신 문서에 만든 사람 남겨주시고, 관리하는 시간은 제 업무로 잡아주세요."
"파일만 주면 돼"라고 할 때 "파일만 드리면 고장 날 때마다 저를 찾게 되실 거예요. 사용법 문서까지 같이 만들어두고 싶은데 반나절 정도 시간 잡아도 될까요."
옆 팀까지 쓰고 싶다고 할 때 "쓰셔도 됩니다. 다만 문의는 저한테 개별로 말고 한 곳에 모아주세요. 주 1회 확인해서 답변드리겠습니다."
전사로 확산하자고 할 때 "전사로 넓히면 관리가 별도 업무가 됩니다. 담당과 배정 시간을 먼저 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미 다들 쓰고 있는데 아무도 안 알아줄 때 "지금 ○○팀까지 쓰고 있어서 문의 대응에 주 ○시간 정도 들어갑니다. 이 부분을 업무로 잡아주실 수 있을까요."
평가·면담 자리에서 "올해 ○○ 자동화로 팀의 처리 시간이 ○○ 줄었습니다. 만든 것과 관리하는 것 둘 다 반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상사가 자기 성과처럼 소개할 때 "이건 제가 만든 거라고 소개해주시면, 다음 것도 만들 동기가 됩니다."

문장들이 공통으로 하는 일은 하나입니다. 공짜로 흘러가려는 것에 이름과 시간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 거절하지 않으면서 값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경험상 이 요청은 대부분 받아들여집니다. 대놓고 "누가 만들었는지 안 밝히겠다"고 하는 조직은 드물거든요. 안 밝혀지는 이유는 대부분 악의가 아니라, 아무도 안 물어봤기 때문입니다.

회사 돈으로 만든 건데 내 것이 맞나요

이 반론이 실제로 가장 많이 나옵니다. 회사가 준 계정으로, 근무 시간에 만들었으면 그건 회사 자산 아니냐는 이야기요.

법적·계약상 귀속은 회사 규정과 근로계약에 따라 다르고, 이 글에서 단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그 다툼과 이 이야기는 층이 다릅니다.

소유권이 회사에 있어도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기록관리에 드는 시간의 배정은 여전히 남습니다. 저작권을 주장하자는 게 아니라, 이 일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록에 남기자는 거니까요. 회사 장비로 만든 성과여도 그걸 만든 사람 이름이 남는 건 조직에도 이득입니다. 다음에 비슷한 게 필요할 때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반대로 "그냥 공유하는 게 미덕"이라는 입장도 절반은 맞습니다. 팀에 도움이 되는 걸 나누는 사람이 결국 신뢰를 얻으니까요. 이 글이 반대하는 건 나눔이 아니라 이름 없는 나눔입니다.

이미 그냥 공유해버렸다면

많은 분들이 이미 이 단계에 있습니다. 반년 전에 아무 조건 없이 넘겼고, 지금은 문의만 받고 있는 상태요.

되돌리는 것도 늦지 않았습니다.

  1. 현황을 숫자로 만듭니다. 어느 팀 몇 명이 쓰는지, 문의 대응에 주 몇 시간이 들어가는지. 2주만 기록해도 근거가 됩니다.
  2. 이름을 지금 붙입니다. 사용법 문서를 한 장 만들면서 맨 위에 "만든 사람"과 "문의 창구"를 적어 넣으면 됩니다. 새로 요청할 필요 없이 문서 한 장으로 기록이 생깁니다.
  3. 시간을 요청합니다. "지금 이만큼 쓰이고 있고 관리에 이 정도 들어갑니다. 업무로 잡아주세요." 현황 숫자가 있으면 이 대화는 어렵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실력을 감추면 그 실력은 어디에도 안 잡히고, 조건 없이 내주면 이름 없는 일만 남습니다. 그래서 공유 요청을 받았을 때 할 일은 거절도, 그냥 넘기는 것도 아니라 조건을 붙이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같이 쓰시죠. 대신 누가 만든 건지 남겨주시고, 관리하는 시간은 제 업무로 잡아주세요."

그 후배가 지켜야 했던 건 자동화가 아니라 자기 이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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