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주도적으로 일하라는데 손에 안 잡힌다면 — 자율성은 방향에서 시작합니다

Daniel · · 조회 19
주도적으로 일하라는데 손에 안 잡힌다면 — 자율성은 방향에서 시작합니다

연봉으로 따지면 2천만 원 정도를 손해 보고 스타트업으로 옮긴 분이, 6개월 만에 자기가 ADHD인가 의심하게 됐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기본급도 깎이고 성과급도 포기했지만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고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서 겪은 건 자율이 아니라 막무가내였습니다. 대표가 눈앞에서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귀로도 마음으로도 들어오지 않았고, 팀원들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은 논리를 만들어 가서 설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장기 계획은 없고, 어디서 뭘 출시하면 우리도 하자며 긴급회의만 열렸고, 기존 자료를 물어보면 "그 일 하던 사람이 나가서 아무도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결국 6개월 동안 몰입하지 못하고 그만두셨습니다. 국내에서 이름을 아는 스타트업의 임원들 중에도 이런 경우가 꽤 있습니다.

자율성은 마음대로 할 자유가 아닌가요?

자율성이라고 하면 대부분 선택지부터 떠올립니다. 재택을 고를 수 있고, 출근 시간을 정할 수 있고, 방법을 간섭받지 않는 상태요.

그런데 위 사례를 보면 선택지는 충분했습니다. 오히려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자율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자율성의 시작은 선택지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먼저 알고 나서 자기만의 방식을 고르는 것이 자율입니다. 방향이 없는 상태에서 방법만 자유로우면 그건 자율이 아니라 방치에 가깝습니다.

방향이 없으면 사람은 회사에 비전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대개 틀리지 않습니다.

왜 이유를 안 주면 일이 손에 안 잡힐까요?

내 일이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야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덜 챙길지 내가 정할 수 있습니다. 이게 없으면 우선순위를 정할 근거가 없어서, 결국 전부 물어보거나 전부 똑같이 힘을 쓰게 됩니다.

그래서 이유는 주지 않고 "주도적으로 해달라"고만 하면 권한을 준 게 아니라 책임만 넘긴 것이 됩니다. 잘못되면 판단한 사람의 몫이 되는데, 판단할 재료는 없었으니까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쁜 경우가 있습니다. 주도적으로 하라고 하면서 방향이 계속 바뀌는 경우입니다. 이때 자율성은 어떤 상황보다 크게 훼손됩니다. 사람은 "내가 정해도 소용없다"를 배우고, 그다음부터는 정하지 않습니다.

태니지먼트가 국내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몰입 조사에서도, 일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일에 몰입하지 못할 확률이 8배가량 높게 나타났습니다. 여섯 가지 몰입 요소 중에서도 영향이 큰 축에 속합니다.

일의 방향을 확인하는 질문은 어떻게 던지나요?

"이거 왜 해요?"라고 물으면 따지는 것처럼 들립니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물으면 대부분 답이 돌아옵니다. 상황별로 그대로 쓸 수 있는 문장을 정리했습니다.

상황 그대로 쓰는 질문
새 업무를 받았을 때 "이 결과를 누가 보고, 어떤 결정을 하시게 되나요?"
우선순위가 헷갈릴 때 "이번 주에 이것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게 있을까요?"
자료·보고서를 만들 때 "이 자료가 어디에 붙는 자료인지 알려주시면 형식을 맞추겠습니다."
반복 업무일 때 "이 작업이 없으면 어느 단계가 막히나요?"
갑자기 방향이 바뀌었을 때 "기준이 바뀐 부분만 짚어주시면 나머지는 그대로 가겠습니다."
여러 요청이 동시에 올 때 "지금 두 건이 걸려 있는데, 늦어져도 되는 쪽이 어느 쪽일까요?"
답이 안 돌아올 때 "제 이해로는 A 목적이라고 보고 진행하겠습니다. 다르면 알려주세요."

마지막 문장이 중요합니다. 아무도 답을 못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기다리지 말고 내가 이해한 방향을 적어서 확인받는 쪽이 빠릅니다. 틀리면 그때 고쳐주니까요.

아무도 방향을 못 알려주면 어떻게 하나요?

답이 계속 돌아오지 않는다면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첫째,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과 정할 사람이 없는 것은 다릅니다. 신규 프로젝트라 방향이 유동적인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잡힙니다. 반면 몇 달째 아무도 답하지 못한다면 그건 조직에 방향을 정하는 기능이 없다는 뜻입니다.

둘째, 그럴 때는 스스로 답을 만들어보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이 일이 어떤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지, 어떤 결정을 더 낫게 만드는지 스스로 정리해두면 최소한 내 판단의 기준은 생깁니다. 실제로 이렇게 만든 기준이 나중에 조직의 기준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그 기간이 길어진다면 다른 선택을 고민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방향을 혼자 만들어내는 일은 잠깐은 성장이지만 오래 지속되면 소모입니다.

리더라면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요?

팀원이 주도적으로 일하지 않는 것 같을 때, 태도를 평가하기 전에 의미가 전달되었는지를 먼저 확인해주세요.

  • 업무를 줄 때 "무엇을"과 함께 "이게 어디에 쓰이는지"를 한 줄 붙입니다.
  • 방향이 바뀌면 바뀐 이유를 짧게라도 말해줍니다. 이유 없이 바뀌는 경험이 쌓이면 사람은 판단을 멈춥니다.
  • 팀원이 이해한 방향을 먼저 말하게 하고, 다르면 그 자리에서 맞춥니다. 이게 가장 빠른 교정입니다.

주도성은 성격이 아니라 정보에서 나옵니다. 판단할 재료를 주지 않고 판단을 요구하면, 성실한 사람일수록 더 자주 확인하러 옵니다.

마무리

일이 손에 안 잡힐 때 우리는 먼저 자신을 의심합니다. 집중력이 떨어졌나, 요즘 마음이 떴나 하고요. 그런데 판단할 재료가 없으면 누구든 그렇게 됩니다.

오늘 하고 있는 일 중 하나만 골라서 확인해보세요. 이 결과가 누구에게 가서 어떤 결정을 낫게 만드는지. 답이 나오면 우선순위가 정리되고, 답이 안 나오면 지금까지 막혀 있던 이유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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